르 코르뷔지에

르 코르뷔지에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스위스 태생으로 본명은 에두아르 쟈네레(Edouard Jeanneret)이다. 그는 파리에서 활동한 프랑스의 건축가이며, 그의 선전가적인 성격과 건축가로서의 성격이 불일치하는 점이 다소 있어 당혹하게 느껴지는 수도 있다. 그의 저서를 보면 기능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보이며, 새로운 유토피아의 건축 철학과 합리적인 계획이념이 넘치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건축작품들은 그로피우스보다 덜 기능주의적이다. 그런 면에서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건축들이 훨씬 더 사회적 요구에 직접적 관련을 갖도록 배려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초기 작품들은 사보아 저택(Villa Savoye, 1929)과 제네바 국제연맹본부 계획안(1927) 및 파리에 있는 스위스 학생회관(1932), 알제리의 도시계획(1929~34) 등을 들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은 매우 개성적이고 충동적이다. 근대적 기술을 적용하였으나 건설을 한다는 것보다는 디자인하는 면에 치중한 감이 있으며, 그의 대표작품들은 큐비즘에 자극된 기하학적인 형태와 시적 상상력이 넘치는 기법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자연에 도전하는 경향을 띠고 건축작품을 만들었으며, 근대구조를 이용하여 얼핏 보기에는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필로티(pilotis)를 활용함으로써 건물을 대지에서 공중에 띄워 올리도록 만들어 극적인 공간 구성 효과를 창안하였으나, 기하학적인 형태의 지나친 추상적인 표현과 기교에 흐른 감도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국제연맹회관 현상안 사무처 건물 투시도

국제연맹회관 현상안 사무처 건물 투시도

전문화된 시대에 한 사람이 화가와 건축가를 겸하는 일을 하게 된 르 코르뷔지에는 예외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일상시의 작업 과정에서 오전에는 그림에 열중했고 오후에는 건축설계에 전념했다. 건축적 착상은 용이하게 이루어졌지만 회화작업에서는 늘 도전적으로 분투해야 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그의 착상에 의한 건축표현의 수단으로서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했다. 그는 이 관점에서 프랑스의 전통을 따라 오귀스트 페레(August Perret)와 토니 가르니에(Tony Garnier)의 작업을 계승하였다고도 생각된다. 당시 건축가들이 철근 콘크리트를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곳은 프랑스뿐이었다. 독일이나 영국의 건축법규는 철근 콘크리트에 의한 우아한 구조형태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불필요한 건축법 규제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인은 그들의 건축물에 경쾌성과 정확성을 요구하였으므로 그것에 맞는 건축법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르 코르뷔지에 건축활동의 출발점은 1915년에 그려진 도미노(Domino)라 칭하는 구조계획도였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6개의 철근 콘크리트 기둥과 두 개의 계단에 의해 연결된 3개의 수평 슬라브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전에는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것을 그가 창안한 것이었으며, 기술자에 의해 발전된 콘크리트 구조를 건축적 표현의 수단으로 만든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현대건축과 구조를 설계하는 기본이 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5원칙을 주장했다.

① 필로티(pilotis): 개방된 공간에 독립하여 서 있는 기둥들 위에 건물이 세워져야만 한다. 주택은 필로티 위에 세워 공중에 떠 있는 모양으로 만든다.

② 골조와 벽의 기능적 독립: 외벽뿐만 아니라 내부 칸막이벽에 있어서도 골조와 벽이 기능적으로 독립되게 만든다.

③ 자유로운 평면: 르 코르뷔지에는 철근 콘크리트 골조를 기술적인 것에서 미학적인 수단으로 전환시켰으며, 그는 주택의 내부공간을 매우 변화 있게 만들기 위해 칸막이벽을 사용했다.

④ 자유로운 파사드: 기둥은 건물 표면보다 후퇴시켜서 세워지며, 바닥면은 기둥 외부로 돌출하여 나간다. 파사드는 단순한 커튼월과 유리창으로 된 외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파사드의 형태는 자유롭게 설계될 수 있으며, 창은 방해 없이 수평으로 연속된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도미노 구조의 당연한 귀결이다.

⑤ 옥상정원: 기술적, 경제적, 기능적 및 정신적인 이유로 평지붕과 옥상정원을 채택할 것을 르 코르뷔지에는 권유한다. 옥상정원에는 화초, 관목, 나무, 잔디 등이 심어진다.

그가 건축설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1922년 이래 르 코르뷔지에는 이 5원칙을 활용 발전시켜 왔다. 몇몇 개인주택의 설계에서 얻은 경험으로 그는 이 원칙들을 더욱 순화된 형태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같은 원칙들이 가장 순수하게 표현된 것은 1930년 포아시(Poissy)에 세워진 사보아 저택(Villa Savoye)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주택계획과 설계에서 주택의 내·외부 공간을 연결하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과 또 내부공간 자체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주택을 개방적으로 설계하였다.

사보아 저택 평면도와 단면도

사보아 저택 평면도와 단면도

이 집은 필로티 위에 세워진 입방체이며, 그것은 속이 완전히 차 있는 괴체()가 아니고, 태양이 비칠 때 그 광선이 내부 전체에 충만해지도록 동남향과 서남향의 부분이 개방되어 있다. 주출입구의 홀은 북서쪽에 있으며 도로에서 접근하려면 집의 남면을 돌아 와야만 한다. 이 집은 모든 방향으로 개방되어 있어 실제로는 정면과 후면의 구별이 없다. 사보아 저택은 한 지점에서 보고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며, 시간과 공간의 4차원적인 구성체를 이루고 있다.

스위스 학생관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구상력이 잘 나타난 유려한 작품의 하나이다. 건물 전체는 지하 깊숙이 암반에까지 이르는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의 필로티로 지지되고 있다. 건물의 한 면은 각 스튜디오의 커튼월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른 면은 거친 돌로 쌓은 벽과 평활한 콘크리트벽으로 곡면을 형성하여 아름다운 건축형태를 만들었다. 이것은 근대건축에서 곡면벽이 다시 사용된 최초의 예가 된다. 특이한 것은 입구홀의 볼륨과 공간의 조형으로 사람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그 방은 비교적 한정된 크기의 것이나 르 코르뷔지에의 구상력은 생생하고 풍부하게 발휘되어서 넓은 공간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스위스 학생관 평면도

스위스 학생관 평면도르 코르뷔지에 및 피에르 쟈네레, 1930~32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하여 건축한 마르세유에 있는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éd’Habitation)은 전세계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이 건물은 1920년대의 평활한 건물 표면이 갖고 있던 미적 특성이 거친 시적인 표면 특성을 지닌 ‘베통 브뤼’(béton brut)로 대치된 새로운 개념을 예시한 최초의 건물이었다. 이것은 또한 미래사회에 대한 르 코르뷔지에의 비전(vision)을 처음 구체적으로 나타낸 건물이라 하겠다.

위니테 다비타시옹 외관

위니테 다비타시옹 외관르 코르뷔지에 설계, 1947~52

르 코르뷔지에의 솜씨에 의해서 노출 콘크리트, 즉 베통 브뤼(béton brut)의 무정형적인 재료는 천연의 암석 같은 특색을 갖게 만들어졌다. 철근 콘크리트가 자연석, 목재, 테라코타(terra cotta) 등과 같은 천연재료에 비견할 수 있도록 그 질감을 적절하게 살려서 사용된 것은 이 건물이 처음이었다. 수 년 후 영국에서는 이런 접근방법을 출발점으로 한 브루탈리즘(Brutalism)이라 부르는 건축적 경향이 생기게 되고 1960년대 이후 현대건축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위니테 다비타시옹의 대담성은 한 지붕 밑에 1,600명의 인구를 수용한다는 데 있는 것뿐만 아니라, 이 건물이 사회적인 기능수행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라 생각된다. 이 단위주거에서 가장 흥미 있는 시도는 구매시설을 가로나 지면에 위치시키지 않고 그 건물의 중앙층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외부에서 보면 이 중앙상가(larue marchande)는 건물 입면 중간에 있는 2층 높이의 수직 루버에 의해 그 위치를 알 수 있게 표현되어 있다. 이 루버는 건물의 중앙부 계단실에 수직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네모창들과 함께 건물외관 전체에 활기를 주고 스케일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 17층에는 150명을 수용하는 육아실이 설치되어 있고, 하나의 램프가 옥상 테라스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옥상에는 휴식시설과 얕은 풀 등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여러 가지 놀이시설이 있다.

위니테 다비타시옹 단위주거 평면도

 

위니테 다비타시옹 단위주거 평면도

 
위니테 다비타시옹 단위주거 단면도

 

위니테 다비타시옹 단위주거 단면도

 
위니테 다비타시옹 건물 입면 및 단면

 

 

 
 

인도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50만 인구를 위한 도시건설의 기회를 주었다. 샹디가르(Chandigarh) 수도의 도시계획안은 그의 훌륭한 도시계획 접근방법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이 도시기본계획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800×1,200m 정도의 매우 큰 단위를 가진 블록으로 도시를 구획하여 계획하였다.

샹디가르 수도 도시계획

수도 중추 부분의 계획은 의사당, 정부청사(Secretariat) 및 최고재판소와 총리관저로 되어 있다. 이 건물들의 배치는 부등변 삼각형을 구성하게 되어 있으며, 모든 도로는 평행직교하도록 하고 연속적인 축이 없게 만들었다.


샹디가르 수도 중추 건물군 배치도

 
샹디가르 최고재판소

 

샹디가르 최고재판소르 코르뷔지에 설계, 1956

 
샹디가르 최고재판소 투시도

 

샹디가르 최고재판소 투시도1956

 
 

정부청사 건물은 1956년에 완성되었으며, 이 건물에 뒤이어 의사당이 세워졌다. 본회의장은 상향의 쌍곡면체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상부에는 수평한 지붕면 위로 높이 돌출해 있다. 의사당으로 들어가는 남쪽 입구에는 주열상부에 힘차게 위를 향해 굽은 쉘이 지붕을 형성하여 그 외관이 매우 특이하다. 7개의 재판정을 가진 재판소는 1956년에 완성되었다. 거대한 나비의 날개 같은 이 건물의 지붕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으며 열대의 햇빛과 7월에서 10월까지 계속되는 계절풍이 가져오는 비를 막는 우산 역할을 하고 있다.

샹디가르 의사당

 

샹디가르 의사당르 코르뷔지에 설계, 1959~62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롱샹 순례자 교회당(Ronchamp pilgrim church, 1950~54)은 그의 설계철학에 있어서 놀랄 만한 변화가 나타난 결과라고 평론가들은 생각하였다. 이 건축물은 진기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계속적인 디자인 발전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 분명하다. 이 작품은 근대건축 진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도달된 지표를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롱샹 순례자 교회당

 

롱샹 순례자 교회당르 코르뷔지에 설계, 1950~54

롱샹 순례자 교회당 내부

 

롱샹 순례자 교회당 내부

 
 
 
 

근대건축에서 개인작품활동의 완숙성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작품인 리용 부근에 있는 생트 마리 드 라 투레트 수도원(Sainte Marie de la Tourette, 1960)이다.

라 투레트 수도원 전경

 

라 투레트 수도원 전경르 코르뷔지에 설계, 1960

이 건축은 무엇보다도 자유스럽고 편견이 없는 전통에 관한 배려를 나타내고 있다. 비록 이 건축은 근대적인 기반 위에 계획되어 있으나 전통을 살려서 그 원리에 따라 수도원이 설계되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 이유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이며 조직적인 관례에 따른 수도생활의 활동들이 기본적으로 변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특이한 설계는 르 코르뷔지에의 전형적인 공간과 형태적인 요소들을 모두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라 투레트 수도원 1층 평면

 

라 투레트 수도원 1층 평면

 
라 투레트 수도원 상층 평면

 

라 투레트 수도원 상층 평면

 
 

창조적인 예술가로서 또한 새로운 건축의 창도자로서 르 코르뷔지에의 정신은 현재도 살아서 작용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의 지도적 건축가들에게 준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다. 세계의 모든 건축가들은 각기 자기의 노선을 따르고 있지만, 건축적인 표현과 조형적인 표현을 결합시킨다는 르 코르뷔지에의 기본적인 경향에 영향을 받은 바가 많다고 생각된다.

 르 코르뷔지에 (서양근대건축, 1998. 4. 25.,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심
심 재현
20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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