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 코드 작동 구조

미디어 : 코드 작동 구조

 

플루서에 따르면 코드를 작동하게 하는 구조로서 미디어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에서 정보를 분배·저장하는 담론적 미디어와 새로운 정보를 창조하는 대화적 미디어로 구분된다. 이러한 미디어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사회는 다시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유형은 '대화적인' 사회로서 정보를 계속 확대 재생산하는 수많은 대화적 그룹(예 : 과학·기술·정치적 그룹)을 탄생시켜 사회를 의식화된 엘리트와 의식화되지 않은 대중으로 분열시킬 위험이 있다. 둘째 유형은 '담론적' 사회로서 정보를 중앙 집중적으로 송출하는 담론적 미디어(예 : 교회, 군대, 대중매체)를 통해 사회를 전체주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셋째 유형은 '이상적인' 사회로서 이 사회에서는 담론과 대화가 서로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대화는 담론에 의존하고 담론은 대화를 자극한다. 이 세 번째 사회는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구현되어 가고 있다.

 

1. 미디어의 개념

플루서는 미디어를 물질적·기술적 특성과 상관없이 코드가 작동하게 하는 구조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전화와 학교의 학급, 육체와 축구는 미디어다. 이들은 코드가 기능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미디어는 그 특수한 방식으로 기능한다. 커뮤니케이션학을 가르치는 대학에서는 미디어학이 교육 프로그램의 핵심을 형성한다. 물론 모든 미디어가 연구될 수는 없고, 강의되는 미디어의 선택기준은 대학생들의 미래 직업 기회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상황은 이론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왜냐하면 이론은 미디어를 총체적으로 이해시키기보다는 미디어 분석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루서는 텔레비전이나 신문과 같은 미디어 대신 송신자와 수용자 간에 일어나는 코드의 흐름(작동)과 관련된 역동성을 미디어 연구의 기준으로 제안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두 가지 종류의 미디어가 서로 구별된다. 곧, 코드화된 메시지를 송신자 기억에서 수용자 기억으로 흐르게 하는 미디어와, 코드화된 메시지를 다양한 기억들 간에 교환되도록 하는 미디어가 그것이다. 전자는 담론적 미디어(diskursive Medien)라고 하고, 후자는 대화적 미디어(dialogische Medien)라고 명명된다. 담론적 미디어의 예로는 포스터와 영화관이 있고, 대화적 미디어의 예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증권시장이나 마을의 공터가 있다. 이러한 예들에서 미디어 구분 기준은 유동적이다. 누군가 포스터를 인각장식()으로 긁어 놓으면 포스터는 대화적 미디어가 될 수 있고, 스크린 위에 달걀을 던지면 영화관은 대화적 미디어가 될 수 있다. 또한 증권을 거래하지 않고 가격표만 설치한 증권시장은 담론적 미디어가 될 수 있으며, 마을 공터에서 잡담 대신 정치가의 연설을 듣는다면 마을 공터는 담론적 미디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코드의 기능은 미디어의 형이상학적 형태[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이 선호한 의미처럼]보다는, 어떻게 우리가 매체를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2. 담론적 미디어

『기호학이론(A Theory of Semiotics)』(1976)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 )

『기호학이론(A Theory of Semiotics)』(1976)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 )ⓒ 커뮤니케이션북스

먼저 코드화된 메시지가 송신자 기억들에서 수용자 기억들의 방향으로 중개되는 데 사용되는 담론적 미디어에서 송신자와 수용자의 구분은 유익하지만, 대화적 미디어에서는 무의미하다. 그러나 담론적 미디어 자체에서도 수용자는 송신자가 될 수 있고, 송신자를 수용자로 만들 수 있다.

담론적 미디어의 특징은 수용자 위치가 매체 자체 내에서 반대로 바뀔 수 없고, 수용자가 송신자로 되려면 다른 미디어를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문에 대해 동일한 신문 내에서 대답할 수 없고, 우리가 쓴 글이 동일한 신문의 다음 판에 인쇄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편지를 손에 넣어야 한다. 따라서 직·간접적인 답변 가능성이 대화적 미디어와 담론적 미디어의 차이를 만든다. 그리고 이것에 주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수용된 메시지에 대한 답변을 포함하고 있는 '책임'의 개념을 밝히기 때문이다.

담론적 미디어의 목적은 주어진 기억 속에 저장되는 정보들을 다른 기억들 속으로 중개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정적 엔트로피의 의도다. 담론이 이루어진 후 정보의 총량은 더 커진다. 왜냐하면 정보가 수많은 기억 속으로 분배되었기 때문이다. 송신자는 어떤 정보도 상실하지 않고, 수용자는 정보를 획득한다. 그러나 소음의 문제, 곧 모든 담론적 미디어의 중개에서 나타나는 간섭은 있을 수 있다. 담론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새로운 정보도 탄생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담론의 목적은 새로운 정보를 창조하는 대화의 목적과 달리 기존의 정보를 배분하는 것이다. 여기에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역동성이 존재한다. 대화 속에서는 담론을 통해 분배된 정보들을 이용해 담론의 수용자들이 미래의 대화 속에서 다시 새로운 정보를 창조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들이 창조된다. 다양한 미디어들은 서로 동시화되어 있고, 전체로서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일어나느냐 하는 것은 미디어들의 협연()에 달려 있다. 담론이 지배적이면(오늘날처럼), 커뮤니케이션은 점점 더 적은 정보를 갖게 될 것이고, 이와 반대로 대화가 지배적이면(18세기처럼), 정보는 폐쇄된 그룹 내에 모아져 폭발할 수 있다.

정보가 분배되는 방법들은 다양하고, 다양한 담론 구조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담론 구조의 공통점은 정보가 분배된 후 어떤 방식으로든 충실하게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용자의 기억 속에 보존된 정보는 어떻게 해서든지 송신된 정보와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수적인 특징은 비록 모두가 의식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모든 담론의 공통점이다.

담론은 정보를 분명하게 흐르도록 하기 때문에(송신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전방으로), 기능적으로 진보적이며, 가끔은 폭력적으로 진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치 발전과 담론은 거의 동의어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사는 정보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중개되는 담론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담론을 정보의 입장에서 고찰하면, 그 보수적 특징은 대화와 비교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중요한 인식이고, 정보의 입장에서 보면 담론적 미디어는 정보의 통조림이고, 광범위하게 담론적 미디어에 의존하는 대중문화는 보수적 사회의 산물이다.

그러나 담론에서 중요한 것은, 담론을 통해 분배된 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정보를 창조하는 대화와 달리, 어떤 새로운 정보도 탄생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대중매체 시대를 연 커뮤니케이션 혁명(활자 혁명, 전파 혁명)이 일어난 사회에서는 담론적 매체가 전체주의적 위상을 차지하고, 민주주의 혁명과 인터넷 혁명(디지털 혁명)이 일어난 사회에서는 대화적 매체가 담론적 매체의 지배적인 상황을 점차 극복하고 있다(김성재, 2002, 94~105).

결국 담론이 지배적이면 텔레비전 시청자들에서처럼 인간 커뮤니케이션에서 새로운 정보가 탄생되지 않기 때문에 정보는 점점 더 적어질 것이고, 대화가 지배적이면 과학·기술 공동체에서처럼 폐쇄된 인간 집단의 내에서 정보는 폭발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 커뮤니케이션 전체로 볼 때 이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려면 담론적 미디어와 대화적 미디어의 상호협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매체 간의 협연은 인터넷과 같은 대화적 매체 기술의 발달 및 광범위한 확산과 함께 사회의 민주화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3. 대화적 미디어

담론적 미디어가 대화적 미디어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혁명적이다. 플루서에 따르면 이러한 담론적 미디어를 대화적 미디어로 전환시키는 일은 오늘날 소비사회에서 아직도 유일하게 가능한 혁명적인 행위다. 예컨대 텔레마틱 사회에서 망형 대화를 가능케 하는 인터넷은 조용한 커뮤니케이션 혁명이다. 우리는 대화가 다양한 기억 속에 분배·저장된 정보를 새로운 정보로 합성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때, 대화에서 어떤 매체들을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담론적 매체들이 원래는 대화적 매체로 착안되었다는 데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라디오의 발명자는 무선전화를 발명했다고 믿었고, 텔레비전 발명자들은 무한대의 시청각적 대화를 가능케 한 매체를 발명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매체들의 대중매체 전환은 그 제작방식의 결과가 아니라, 그 소유자가 내려야 할 결정의 문제다. 이러한 맥락에서 1932년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967)는 그의 '라디오 이론'에서 라디오를 음악과 연속극 드라마를 주로 송출하는 국가 통제의 확산기구(Distributionsapparat)에서 사회 개혁적 대화가 가능한 사적인 커뮤니케이션기구(Kommunikationsapparat)로 전환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매체가 실제로 대화에 사용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많은 사람들은 다방, 거실, 회의실 등과 같은 전()기술적 매체라고 답할 것이다. 담론들이 산업혁명 이후 과학의 성과를 사용하는 데 반해, 우리의 대화는 전화를 제외하면 원시적인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대화의 뛰어난 매체는 시장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시장이 대화의 중심으로 기능했던 소도시와 마을을 파괴시켰다. 대도시의 인구집중과 전원도시의 분산화는 전통적인 방식의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거실과 다방과 같은 대화의 장소에서도 신문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담론을 수용하면, 대화는 현존하는 담론의 배경 소음을 동반한다.

대화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 구조 곧, 원형 구조와 망형 구조에 의해 구별된다. 전자의 예로는 시장, 원형 탁자, 의회, 실험실 등이 있고, 후자의 예로는 체신, 전화, 인터넷 등이 거론된다. 원형 구조에서 대화에 참가한 파트너들은 새로 형성되어야 할 정보가 제시되는 빈 중앙을 둘러싸고 모여 있고, 빈 중앙은 합의, 공통분모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망형 구조에서는 대화에 참여한 모든 파트너가 중심을 형성하고 정보의 합성은 전체 망의 영역에서 확산을 통해 일어난다. 원형 대화와 망형 대화의 근본적인 차이는 전자는 폐쇄된 체계이고, 후자는 개방적인 체계라는 점이다.

그러나 대중의 차원에서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대중매체의 완성을 통해 대화를 제거했고, 엘리트 차원에서 이 혁명은 나무형 담론(과학·기술의 담론)의 완성을 통해 대화를 폐쇄하고 낯선 집단으로 분해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를 조종하는 대화들 중 유일하게 가능한 커뮤니케이션은 이 대화들을 고도의 추상적인 코드로 번역하는 것이다. 곧, 컴퓨터 비츠로 프로그램화된 인터넷이라는 망형 대화만이 대중매체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성재(2002년) 텔레마틱시대의 커뮤니케이션 철학: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도래와 그 의미. 《한국방송학보》 16권 4호, 74~112.
  • Brecht, B.(1967년) Der Rundfunk als Kommunikationsapparat. In B. Brecht, Gesammelte Werke Bd. 18. (pp.127~134). Frankfurt a. M.: Suhrkamp.
  • Flusser, V.(1996a). Kommunikologie. 김성재 옮김(2001년). 『코무니콜로기』.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주제어

  • 미디어, 코드 작동 구조, 담론적 미디어, 대화적 미디어

     미디어 : 코드 작동 구조 (플루서, 미디어 현상학, 2013. 2. 25., 커뮤니케이션북스)

정
정 현
20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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