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미술 -[생각의 미술관] 키워드 인터뷰

인문학 작가 박홍순이라고 합니다. 
철학은 암기과목이 아니거든요.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에 
미술이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저자 소개>
독자들로부터 ‘인문학 전도사’라고도 불리며
미술, 소설, 영화 등 예술과 인문학을 결합하여
인문학의 이정표가 되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저서>
-미술관 옆 인문학
-사유와 매혹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헌법의 발견

철학의 안내자미술

철학 책을 봤던 분들은 실감하셨겠지만한 문장 나가기도 힘들잖아요어려워가지고그러면 입문서를 찾게 되는데입문서라는 게 대부분이 철학자들의 주장을 다이제스트(간추린식으로 모아둔 것들이 많아요

그런데 철학은 암기과목이 아니거든요.


자기 스스로의 생각으로 자기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고이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고나는 뭘 해야 되는지를 생각해내는 힘을 기르는 게 철학인데암기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에 적합한 게 뭘까했을 때 미술이 상당히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문학으로 비유하자면 시와 소설이 다르잖아요소설은 줄거리가 쫙 있어요다 설명해요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가 생각할 게 별로 없어요우리 드라마 보면서 생각하지 않잖아요그냥 따라가잖아요이야기에그러면 자기가 스스로 생각할 방법이 없잖아요하지만 시는 짤막한 구절 안에 함축적으로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우리가 상상의 나래를 펴야지만 그 의미가 제대로 접수가 되잖아요마찬가지로 하나의 그림 안에 워낙 많은 메시지가 압축되어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실타래처럼 하나하나 생각의 고를 파들어 가기 쉽다철학의 입구를 더듬거리며 찾는 데는 제일 적합하다 생각해요.

 

분류시킬 수 없는 독자성고흐

책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그림을 실어 놨는데요. 일단 보면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아요그런데 마음에 와 닿는 게 그림 중에서도 고흐의 밤 그림이 특색이 있기 때문이에요하늘에서 별이나 달이 굽이치고폭포수처럼 흘러내리기도 하고이런 모습이 독창성이 있는 거죠사실은요하늘 아래 새로운 게 어디 있겠어요누가 한 번도 그리지 않은 것을 그린 건 얼마 되지 않을 거예요중요한 건 동일한 것을 그리더라도 얼마나 특색 있게 그리느냐. 동일한 것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그런데 이것이 철학에서도 동일하게 중요성을 지녀요철학은 어떤 면에서는 끊임없이 자꾸 동일성을 강요해 왔어요지금까지의 철학은그래서 같은 것끼리 범주를 묶어요이성적인 것감성적인 것의식에 해당하는 것무의식에 해당하는 것이렇게 서로 다른 것들을 묶어서 자꾸 분류를 해요

그런데 대부분의 체계화는요, 
수직적으로 피라미드를 만들어요. 
이 피라미드 위에 있는 건 당연히 중요하다고 여기는 거겠죠. 밑에 있는 건 덜 중요한 거겠죠.

그 과정에서 언제나 정신적인 것은 우월하고 육체적인 것은 열등한 거고. 이성적인 것은 정상적인 거고, 감성적인 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거고, 이런 식의 분류 체계를 만들어왔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그 수직적인 계열 자체를 누가 만들었겠어요? 예를 들어 노예제 사회의 철학은 누구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졌겠어요? 당연히 노예주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졌겠죠. 그럼 중세시대의 철학은 누구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졌겠어요? 중세 신분제에서는 영주라든가 교회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졌을 거란 말이에요. 다시 말해서 철학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동등한 게 아니라 특정한 세력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요. 

주류의 사고방식, 동질성을 넘어선 개별성에 대한 생각. 이게 중요하다는 거죠. 그걸 그림으로부터 한 번 찾아본 거예요.

 

모순의 활력마그리트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면 서로 모순되는 걸 한 장면 안에 넣어놓은 것이 많아요. 

하늘은 환한 대낮인데 집이나 나무는 밤인 경우들이 많죠.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낮과 밤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런 그림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면요, 우리 현실이 원래 그래요. 순수한 밤이라는 게 있을까요? 없어요. 왜냐면 우리 우주에는 해와 같은 발광체가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빛이 많고 적고는 있어도 빛이 완전히 없는 상태, 순수한 어둠. 이거는 우리 머릿속에만 있어요. 순수한 빛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죠. 이 우주에는 태양보다 밝은 빛이 있을 수도 있어요. 낮과 밤으로 구분하지만 사실은 그 안에 어둠과 밝음이 섞여있는 정도가 다를 뿐이지 그냥 어둠, 그냥 빛, 이런 건 세상에 없죠. 

우리가 만나는 건 다 빛과 어둠이 어느 정도 상반된 것이 섞여있는 모순 상태예요.

제가 삶과 죽음 그림을 넣은 것도 같은 이유인데요. 
우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린 죽어가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세포도 생겨나는 것과 함께 죽어가는 세포도 있는 거잖아요. 또 언제든지 죽을 수 있어요. 평균 수명은 진짜 평균을 말하는 거지, 내가 그 수명까지 살 거라는 걸 보장해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이 함께 있는 삶을 살아요. 그런데 이걸 인식하는 게 왜 중요하냐? 만약 오늘 같은 삶이 내일, 내일모레, 그리고 영원히 이어진다고 생각하면요. 오늘은 우리한테 귀한 게 아니에요. 내일 또 있을 건데, 10년 후에 또 있을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오늘 하루를 귀하게 여기지 않아요. 그런데 만약 나에게 주어진 삶이 6개월, 1년 남았다고 하면 우린 정말 행복을 찾을 거예요. 깜짝 놀라서 나한테 정말 소중한 게 뭔지를 찾게 될 수 있어요. 그만큼 내가 삶과 죽음이라는 이 모순 안에 있다는 걸 인식한다는 것은 내 삶에 새로운 활력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성욕의 시민권실레

제가 책 안에 실레의 그림을 넣었을 거예요실레는 서양의 미술사에서 외설을 대표하는 화가로 찍혀있습니다실제 재판도 받았고 심지어 재판정에서 그 사람의 그림 한 점이 불태워지기도 했어요엄청난 모욕이죠그만큼 외설을 상징하는 작가인데실레의 스승이 클림트예요우리가 잘 아는 에로티즘의 화가그런데 둘 다 에로티즘을 추구했는데 실레는 외설의 대명사라면클림트에 대해서는 외설의 딱지를 붙이지 않아요오히려 (클림트는우아한 관능성실레는 마니아 아니면 불쾌하게 생각해요

클림트는 신화를 그렸어요. 현실을 그린 게 아니에요. 그런데 실레는 현실 얘기를 그린 거예요. 자기를 그렸어요. 자기의 성을 그린 거예요.

그 이전에도 성은 많이 다뤘지만 대부분은 그리스 신화에서 모티브를 땄어요그러니까 현실이 아닌 것처럼 점잔을 떤 거죠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요우리 인간은 본성본능이라는 게 있잖아요식욕수면욕성욕그런데 인간의 본성과 본능을 부정하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나요그 본성과 본능을 인정해 줄 때 사람을 사랑하는 거죠

그런데 다행히 삼대 욕구 중에 식욕과 수면욕은 시민권을 얻었어요인류 역사의 온갖 혁명과 투쟁을 보면빵을 달라잖아요먹게 해달라는 거잖아요그래서 현대사회의 복지가 먹게 해주는 데 방점을 찍고 있는 것도 그게 시민권을 얻은 걸 보여주는 거고요수면욕도 시민권을 얻었어요쉰다는 거예요잠을 충분히 자는 것여가 활동을 즐기는 것이런 걸 통해서 그것도 시민권을 얻었어요

그런데 인간의 욕구 욕망 중에 유일하게 시민권을 못 얻은 게 성욕이에요. 그건 지금도 외설이라는 이름으로 가둬두고 있어요들뢰즈라캉, 우리가 알고 있는 20세기 후반 이래의 서양 철학자들이 중요하게 얘기하고 있는 건 욕망의 해방이거든요지금까지 수천 년간의 철학의 역사가 욕망을 억압하는 역사였다면가장 중요한 철학의 과제는 인간에게 마지막까지도 시민권을 박탈하고 있는 성욕욕망이걸 해방하는 게 철학의 과제다그럴 때 인간은 드디어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 거다.

 

철학의 힘으로 살아나다프리다

숙명론적 철학을 가진 사람은 숙명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판단하게 돼 있어요또 관념론적인 철학을 가진 사람은 현실에서 붕 떠서 관념적으로 살아가게 돼 있어요자기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에 맞게 살아가고 행동하게 돼 있잖아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면 참혹함을 느껴요왜냐면 몸이 다 무너진 거잖아요실제로 어릴 때부터 몇 번의 사고를 당하면서 몸이 다 부서졌어요그러니까 조건으로 보면 프리다 칼로는 비관주의 삶숙명론적인 삶을 살았어야 해요하지만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삶을 살았고예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또 창조적인 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지식인이기도 했거든요

어떻게 온몸이 망가진 사람이 그럴 수 있겠는가자기의 정신적 활동예술적 활동 속에서 얼마든지 타인들이 할 수 없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할 수 있다는나름의 자기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이 도달하지 못하는 더 능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고보통은요자기 몸이 아프면 세상일에 관심이 없어요사실 TV 켜보면 부쩍 건강에 관한 프로그램이 많죠우리가 건강()을 내 주요한 사고로 받아들이는 순간 자기만 생각하게 돼 있어요이 사회에 건강에 대한 것들을 막 퍼뜨리면사람들은 내 몸만 생각해요.. 사회정치적 무관심을 갖게 돼요만약 프리다 칼로가 자기 건강만을 생각했다면 자기 안으로 쪼그라든 삶을 살았을 거예요하지만 이 사람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자기에게도 행복이라는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자기 삶에 그걸 녹여냈거든요그렇기 때문에 적극적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철학을 가졌느냐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규정한다는 면에서 철학은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한시도 손에서 놓아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우리의 과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생각의 미술관

저자 박홍순

출판 웨일북(whalebooks)

발매 2017.04.30.

안
안 수일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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